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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야기] 생태소설 이상한 나라 여행기 Ep3. 일곱 빛깔 사랑과 행복의 나라
본문
<언젠가 먼 나라를 여행했다. 이상한 나라였다. 어쩌면 꿈속이었을까? 이 글은 그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나로선 죽기 전에 반드시 남겨야 하겠다. 읽히든 버려지든 후세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이 글은 그 나라 여행기 세 번째 이야기다.>
※ 지난 이야기 줄거리
주인공 화자는 꿈인 듯 생시인 듯, 이상한 나라 여행을 시작한다. 비행기 입국이 허락되지 않아 승용차를 빌렸다. 일부러 느린 운행을 위해 울통불퉁 자갈로 포장된 길로 접어들면서 이 나라 여행은 시작되었다. 가장 넓은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 도무지 속도를 내지 못해, 숙소에 늦게 도착한 일행은 늦은 점심을 먹는데 다들 자신을 먹여 살려주는 음식 앞에서 짧은 묵념의 관습이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이후 밤시간, 이 이상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이 나라의 언어 이해 세미나에 참여한다. 우선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 용례부터 학습한다. ‘사회적 약자’라는 용어가 이 나라 사전에는 없다는 점. ‘자살’이라는 단어가 사전에는 있지만 이미 사어에 속한다는 점에 놀라워한다.

세미나는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계속되고 있다. 나뿐 아니라 참가자 모두 이 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짐작게 하는 언어 용례에 깊은 인상을 받고 있었다. ‘척척척’ 토론이 잠시 멎을 때마다 정적을 깨는 벽시계 소리가 유난하다. 강사는 새벽 2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흘낏하더니 서두르는 듯했다.
“이젠 이 나라에만 있는 단어들도 알아볼까요. 우리는 ‘겨울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몇 개 안 되지만 북극 이누이트족은 눈 명칭이 수백 개나 된다지요. 아마 눈은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서 이렇게 눈 명칭이 많아진 것이겠죠. 이같이 한 개념이 여러 이름으로 표현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이 나라에도 있어요. 무엇일까요?”
“힌트 좀 주세요~” 누군가 목청을 돋운다. “아. 힌트가 나가면 쉽게 맞출 것 같은데요. 음~ 연인들이 자주 쓰는 말이라면 단박에 맞추겠죠”
나는 자신도 놀랄 만큼 용수철처럼 솟구치며 소릴 질렀다. “정답이요! 사랑, 사랑입니다!”
좌중의 시선이 일거에 내게 모여들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강사 역시 함박웃음으로 맞장구쳐준다. 딩동댕~ 정답입니다. 강사는 내 머쓱함을 감추어주고 싶었는지 나보다 더 신나게 호응해 준다. “어떻게 아셨어요? 이렇게 숨도 안 쉬고 맞추신 분은 처음이에요. 하하.”
평소 잘 나서지 않는 내가 왜 그랬을까. 흐흐흐… 마른 땅을 작은 모종삽으로 긁어내듯, 억지웃음으로 쑥스러움을 덮어 대려는 내 모습에 움찔한다.
“‘사랑한다’를 우리 수화에서는 이렇게 표현하죠.” 강사는 주먹 쥔 왼손이 연인의 까맣고 동그마한 머리인 양, 오른손으로 살살 쓰다듬는다. 근데 이 몸짓은 감정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겠지요. 중독적이고 배타적 사랑일 땐 어떨까요. 아마 주변을 몇 번 휘휘 쓸어낸 뒤, 간절한 표정으로 쓰다듬지 않을까요. 너무너무 귀여울 땐, 또 다른 손짓과 표정이 나오겠죠. 이렇듯 이 나라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일곱빛깔무지개보다 더 자잘한 빛깔로 표현된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랑 표현은 번역이 힘듭니다. 그저 뭉뚱그려 ‘사랑한다’라고 하는 수밖엔 없어요. 비슷하게 ‘행복’이라는 단어도 그래요. 이른바 행복에 이름 붙이기죠. 행복의 이름이 많다는 건, 그만큼 행복의 층위가 넓고 깊다는 뜻일 겁니다. 아! 신기한 건, 이 나라에서 행복을 표현하는 단어만큼 슬픔의 단어 또한 많다는 점이에요. 재미있지 않아요?
“에잉? 슬픔은 행복과 반대개념이잖아. 행복 감정이 차고 넘치는 곳이면 그 반대인 슬픈 감정은 왜소해져야 하지 않을까?”
강사는 질문하고 싶어 달싹이는 입의 움찔거림을 이미 눈치챘다는 듯, 순례객 하나하나에 미소 머금은 눈짓을 보낸다. “당연히 이상하죠? 행복 표현이 넘치는데, 왜 슬픔의 표현 역시 그만큼 존재하는지. 밤이 깊었네요. 숙제로 드릴 테니 다 같이 꿈속에서 해답을 찾아볼까요?”
잠자리에 들었다. 이 신기한 나라에서의 첫 밤이다. 갑자기 빗방울이 창에 듣는다. ’크리설리즘‘(뇌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실내에서 느끼는 양막(나비 번데기)안 같은 평안함)¹- 이 나라의 행복을 표현하는 많은 단어 중 하나라고 한다. 슬픔에 붙여진 이름이 행복에 붙여진 이름만큼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슬픔을 아는 자만이 행복도 제대로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장대비 듣는 밤, 크리설리즘이 내 맘 가득 차오른다.
¹슬픔에이름붙이기,존케닉,윌북,2024.p23
※ 천주교부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소식지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이야기 2026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 / 조영재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