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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야기] 이상한 나라 여행기 Ep5. 혼맹을 아시나요?

작성자 부산환경운동연합
작성일 2026-05-02 조회수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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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먼 나라를 여행했다. 이상한 나라였다. 어쩌면 꿈속이었을까? 이 글은 그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나로선 죽기 전에 반드시 남겨야 하겠다. 읽히든 버려지든 후세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이 글은 그 여행에 관한 다섯 번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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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맹이라고 들어보셨어요? 강사가 세미나에 앞서 질문을 툭 던진다. 하나같이 멀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강사는 입꼬리를 올리며 능숙하게 흥미유발용 힌트를 날린다. 색맹, 문맹, 요샌 컴맹은 잘 알고 있지요. 이런 류 중에 하나랍니다. .. .. 혼맹. 책에서 봤는데. 뭐더라. 주특기가 책수집이며 중증 문자중독자 선배 하나가 아아.. 뇌 스캔 효과음을 울리며 머리를 뜯고 있다. 생각났다! 영혼할 때, 혼이지요? 타자의 영혼을 읽지 못하는 눈먼 상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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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맞습니다. 하하. 한 인류학자가 말했다죠. 모든 자기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 우주에 혼이 있는 다른 자기들의 혼을 인식해야 하는데, 혼을 가진 다른 자기들을 알아볼 수 없고, 관계할 수 없는 무능력에 이른 혼의 상실 상태¹라고요. 요즘은 의미를 확장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생명력을 감지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상태를 혼맹이라 규정짓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특정 대상에 대해서는 쉽게 혼맹에서 벗어난다. 사랑하는 이의 온몸, 아기의 맑은 눈망울, 반려동물의 투명한 눈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쉽게 생명의 무한 신비를 느낀다. 하지만 싫어하는 부류 앞에서는 당장 쳐다보기도 싫은 것이 사람 아닌가? 나 역시 선택적 혼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붉은 마가모자에 선글라스를 끼고 성조기를 흔들며 길을 건너는 사람, 그 영혼을 마주하며 교감할 수 있을까. 나 홀로 침잠에 빠져 있는데, 강사의 낭랑한 목소리가 나를 깨운다. “생명의 신비를 읽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혼맹이 만연한 사회일수록 어떤 사회문제가 불거질까요? 당장 물질만능, 경제성장에만 목매는 사회가 되겠죠. 청년들의 은둔형 외톨이 문제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저는 이 신조어가 널리 쓰였으면 합니다. 영성이 메말라가고 있는 현대문명 병리를 알리는 일종의 진단명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묻는다. 강사님은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모두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으세요? ~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이 맥락과 어긋나는 질문은 뭐야강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지 살짝 동문서답식 답변을 내놓는다. 그래서 네 혼맹을 요즘은 다소 광의로 이야기한다고 했죠. 모든 존재의 생명력과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라고요. 중요한 건요. 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혼맹을 뜻하는 단독적 용어는 없어요. 누군가 참지 못하고 불쑥 나선다. “. 약간 실망인데요.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혼맹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여야 하지 않을까요?”


 강사는 마치 반전이라도 있다는 듯 순간 방긋 웃는다. 역시나 이 이상한 나라는 우리를 실망하게 하지 않는답니다. 이 나라에서는 놀랍게도 문맹이라는 단어에 이미 혼맹의 의미까지 다 포함되어 있어요. 이건 뭘 뜻할까요? 아마 이 나라 국민이 대한민국 산천어 축제처럼 생명을 노리갯감 삼아 즐기는 놀이 축제를 보면 미개한 문맹국가라고 생각할 게 틀림없겠지요.

 

 난 순간 사고가 멎었다. 이 나라에서 문맹은 단지 글을 모른다는 차원을 넘어, 타자의 영혼과 교감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포함한다는 사실. 이 나라, 당최 뭐지? 문맹에 이런 의미까지 들어있다는 거. 그만큼 글을 깨치는 유아기부터 모든 생명과 교감하는 능력을, 글 깨치듯 자연스럽게 길러주고 있다는 뜻 아닌가? 이 이상한 나라의 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현대 인류문명에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천주교부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소식지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이야기 2026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¹숲은 생각한다,에두아르도 콘,사월의책,2019,p.204


글 / 조영재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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