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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동심원의 역설(paradox)’을 뚫는 상상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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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사태의 공통점은 국제 원자력 기구(IAEA)의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INES)에서 최상단 위치한 ‘중대사고’라는 점이다. 공학적인 관점에서 설계 기준을 초과할 설계 1만 년에서 10만 년에 한 번 꼴로 사고가 날 확률로 설계된 핵발전소에 3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노심 용융(Melt down)이라는 중대 사고가 반복되었다. 시민들은 이 반복을 막기 위해 탈핵을 다짐하곤 했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체르노빌의 목소리』개정 한국어판 서문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체르노빌을 겪어 본 인류는 핵 없는 세상을 향해 갈 것만 같았다.”라고 서술했다. 인류는 어리석은 반복을 끝낼 것만 같았다. 기대와는 다르게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기억은 점점 회석되고, ‘그 이후’는 진부한 옛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고리2호기 수명연장 대응에 열을 올리고 있던 작년 6월 즈음 묘한 책이 하나 출간되었다. 이 책은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도호쿠 지방을 덮쳤던 그 날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십수 만 명의 주민들이 대피를 했고, 동물들 역시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모두들 대피를 하고 있는 와중에 ‘국가의 명령을 거부하여 소를 죽이지 않고 먹이를 주는 목부’가 있었고, 목부가 있는 그 곳을 ‘희망 목장’이라고 불렀다. 나미에마치에 위치한 그곳의 이름이 ‘희망 목장’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역설적(paradoxical)이다.

묘하다고 평가한 이 책의 제목은 『파라-다이스』이다. 그렇다면 재난의 현장에서 우리는 ‘희망’과 ‘낙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까? 책 제목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제목 중간에 삽입된 ‘-’ 기호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지만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단어로 한정한다면, 제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거부’ 혹은 ‘확장’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접두사 ‘파라(para-)’에 ‘죽음’을 뜻하는 단어 ‘다이스(dies)’를 결합하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낙원’이라는 단어는 다른 의미를 품게 된다. 이 책은 후쿠시마, 체르노빌의 ‘이후’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디아스포라 지식인 서경식은 방사능 재난의 특질을 ‘동심원의 역설’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이는 핵발전소를 중심으로 반경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방사선 선량뿐만 아니라 상상력, 공감 역시 점점 멀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중심에 가까운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에 대한 실감 때문에 현실에 눈을 돌리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를 ‘동심원의 패러독스’라 부른다. 이재명 정부가 강행하는 핵진흥 정책의 기저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발전소 반경에서 떨어진 이들의 빈곤한 상상력과 중심에 위치하는 이들의 외면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파라-다이스』는 사진작가 정주하의 사진연작 「희망 목장」에 대한 소설가 백민석, 황모과의 응답이 뒤섞인 특이한 형식의 책이다. 서경식이 후쿠시마를 갈 때마다 ‘현실만이 지니는 비현실감’이라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힌다고 말했던 것처럼 후쿠시마 사태 이후 제 2핵발전소가 폭발한 미래, 후쿠시마 사태 이후 희망목장 그 자리에서 800년 이상을 살아가는 소들의 미래, 후쿠시마 사태 이후 후쿠시마의 폐허에서 멀지 않은 해안가에서 서핑을 하는 청년의 이야기 등 『파라-다이스』에 실린 이야기들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든다. 책 중간중간 삽입된 ‘희망 목장’에 대한 사진들과 백민석의 단편소설 「검은 소」, 황모과의 단편소설 「마지막 숨」, 정주하의 에세이 「미나미소마 일기」를 정신없이 통과하다보면 ‘동심원의 역설’과 맞닿을 수 있다.
서경식은 동심원의 역설을 깨뜨리기 위한 조건으로 (핵발전소) 반경과 먼 사람들일수록 반경을 향한 상상력을 갈고닦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럼에도 ‘동심원의 역설에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어지럽게 배치를 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질문은 책을 다 본 이후에도 여전히 남는다. 그래도 배치에 대한 개인적인 변론을 하자면 우리는 후쿠시마, 체르노빌에 대한 참상에 대해 끊임없이 들어왔지만 상상력을 갈고닦을 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파라-다이스』의 이미지와 텍스트의 배열들은 그 틈들을 보여줄 뿐이다. 그 틈들을 해석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일 것이다.
※ 탈핵신문 2026년 5월호 문화면 책소개에 실린 글입니다.
https://www.nonukes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1843
글 / 박상현 협동사무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