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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야기] 생태소설 이상한 나라 여행기 Ep6. 경쟁 vs 공생
본문
<언젠가 먼 나라를 여행했다. 이상한 나라였다. 어쩌면 꿈속이었을까? 이 글은 그 여행에 관한 기록이다. 나로선 죽기 전에 반드시 남겨야 하겠다. 읽히든 버려지든 후세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이 글은 그 여행에 관한 여섯 번째 이야기이다>
“나라마다 다른 언어습관은 가히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까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어 차이가 인지 차이. 어쩌면 무의식 차이까지 만들어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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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는다. 나도 눈에 최대한 총기를 긁어모아 강사 입 모양에 집중한다. 우리 한번 상상해 볼까요? 엄마 뱃속에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며 열 달을 채웠다고 해봅시다. ”아가야 하느님은 들에 핀 백합화 한 송이, 덤불 속 작은 새 하나도 넉넉히 입히고 먹여주신단다. 그러니 우리는 오죽 잘 챙겨주시겠니. 안심하고 평안하렴. “반면에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면요? “에구 아파트 대출금 갚으랴.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아빠 벌이만으론 어림도 없구나. 너까지 태어나면 더 힘들어지는데 어쩌지…. 자 어떤가요? 시간이 지날수록 두 나라는 어떻게 변할까요? 저는 나라마다 다른, 거대한 정신적 구조물이 그 나라를 돔처럼 덮고 있는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국민은 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죠. 무의식 수준에서 지배당하고 있달까요?“
내 뒤편 누군가 외친다. “질문 있습니다! 강사님 설명은 사회구조가 인간 본성을 결정한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 본성은 어느 문화든 비슷한 거 아닌가요? 이기적이죠. 마르크스 혁명이 실패한 것도 결국 이기적 본성을 간과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사회가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나는 이기적 본성이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본성이 악한지, 선한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열린 상태인지 어떻게 단정 지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강사는 과연 뭐라 답할까?
“아 좋은 질문이에요” 강사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달변을 이어갔다.
“사람은 본래 ‘이기적이다’라고 보시는 것 같은데, 적자생존을 통한 자연선택의 진화론을 깔고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사실 적자생존은 가장 강한 자의 생존이 아니라 가장 환경에 적응한 자의 생존을 말하죠. 가장 환경에 잘 적응하는 방법에는 강한 힘도 있겠지만, 서로 돕는 공생의 지혜 역시 탁월한 방법일 수 있지요. 실제 생물의 생존방식을 보면 경쟁보다 오히려 서로 돕는 공생이 더 많습니다. 진실로 공생 없이 경쟁만 있었다면 지구는 벌써 거주 불능 행성이 되었을 겁니다. 세포의 에너지 공장이라는 미토콘드리아 자체가 혐기성 고세균과 호기성 세균과의 공생에서 비롯된 것이니, 다른 건 말할 것도 없지요.”

“저는 인간의 참모습을 긍정합니다. 하나의 국가 전체를 돔처럼 덮고 있는 정신적 구조물이 국민을 생존경쟁으로 내모는 사회구조악으로 작용하지 않고, 오히려 해방시켜 공생 우위의 사회구조로 작용해 준다면, 전혀 다른 사회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예가 있습니다. 운전 중 무례하게 끼어드는 차량이 있다고 합시다. 휴가를 받아 마음이 한없이 여유로울 때와 지각 일보 직전 분초를 다투는 조급한 마음일 때, 끼어들기 차량에 대한 반응은 완전 달라지겠죠. 우리 사회는 어느 쪽을 선택하고 있을까요?”
<나는 사람 안에서 두 가지 본성을 본다. 경쟁적 탐욕으로 들떠있을 때 드러나는, 나와 너를 분리하는 본성 하나! 반면 신의 언어인 ‘침묵’으로 고요할 때 발휘되는, 나와 너를 하나로 느끼게 하는 또 다른 본성 하나! 스마트폰에 손이 갈 때마다 멈추고 고요히 나의 심장을 살펴보라. 신의 모상이 숨 쉬고 계시다. 그 신은 지금 내 옆의 낯선 이웃의 심장에도 계시다. 아! 탐욕을 부추기는 사회구조 악에서 빠져나오셔서 모두의 심장을 하나로 이어주시기를...>
※ 천주교부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소식지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이야기 2026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 / 조영재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