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에서 폭발한 흔적의 파편들 > 웹진

본문 바로가기

웹진

웹진

[문화산책] 체르노빌에서 폭발한 흔적의 파편들

작성자 부산환경운동연합
작성일 2026-06-07 조회수 130

본문

 2026426. 체르노빌 핵사고가 발생한지 40년이 되는 날이다. 체르노빌 핵사고는 잘못된 제어봉 설계와 운전원의 실수가 뒤섞인 인재(人災)가 결합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기록되었다. 이 날의 전후로 전국의 탈핵시민단체들은 체르노빌 핵사고의 참사를 기억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부산도 마찬가지로 423()에는 체르노빌을 기억하고 현재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실용주의적 핵진흥 정책을 규탄하는 취지의 기자회견과, 428()에는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의 참혹했던 기억은 점점 희석되고 있는 상황에서 운동과 예술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나눴던 파라-다이스부산 북토크를 진행했다.

 

 북토크를 통해서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의 겪어보지 못한 우리의 상상력을 갈고닦을 틈을 마련해주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환기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행사를 마쳤지만, 그럼에도 항상 남는 의문들이 있다. 우리는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의 참상을 이미지, 상상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태의 전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까? 사태의 전말에 닿기에는 우리의 인지 구조를 훨씬 초월하는 것은 아닐까? 이 사태를 증언할 수 있는 사물들은 덩그러니 폐허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ec20a77c11c4346fc630dba4ed8ee055_1780834084_0025.jpg

 내적인 갈등에 빠져있을 때 다른 예술 작품이 출현했다. 정확히 이 예술 작품인지, 단상인지 분이 안가는 경계에 있는 이 작품은 2026426일 체르노빌 핵사고 40년에 맞춰서 출간되었다. 이 책의 서문은 독자들에게 사유와 명상, 회상과 이미지로 이루어진 서른 개의 파편을 맡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책의 이미지들은 디지털카메라 사진이나 회화가 아니라 감광지(인화지) 위에 물체를 직접 올려놓은 뒤 빛을 쬐어 만드는 기법인 포토그램(Photogram)으로 작업된 이미지들이다.

 

 체르노빌의 접근 금지 구역의 토양에서 재배한 방사성 식물 표본들은 포토그램 이미지와 단상들이 만나 체르노빌의 식물 표본이라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저자들은 사유 불가능하고 재현 불가능한 체르노빌이라는 사건을 공동으로 붙들고 씨름해 나가는 작업이며, “이를 통해 걸어보는 하나의 내기라는 표현을 통해 작업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포토그램을 통해 드러난 이미지들은 마치 눈으로, 코로, 피부로 감지할 수 없던 방사능의 흔적이 마치 아직도 남아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렬하다. 예술 자체가 무언가를 즉각적으로 실현할 효력은 없지만 상상력을 갈고닦을 틈을 마련해준다는 상투적인 멘트가 생명력을 가진 순간으로 격상되는 경험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체르노빌의 증언자로 흔히 인간, 동물, 그리고 남은 폐허들이 지목되지만 식물이 사건의 증언자로 격상된 사례는 특이하다. 아니, 인간과 동물보다도 방사능을 더 기민하게 감지했을 존재는 식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뿌리가 대지에 묶인 식물은 사태로부터 도망칠 수 없지만, 동시에 경이로울 만큼 적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 사태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핵발전은 20세기 최신 과학인 양자역학을 통해 만들어졌다. 신에게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처럼 신이라도 될 줄 알았지만, 사고가 나면 적응은커녕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목숨을 다할 것이다. 인간은 마치 대지에 묶여버린 식물보다 취약함과 수동성, 무력함의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이 작품의 포토그램 이미지들과 강렬한 단상들을 쫓다가 보면 접두사 ‘ex-’ 자주 등장하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라틴어 “ex-”바깥으로 나아가는 운동을 가리키는 접두사이다. 우리는 사건의 외곽에서 심연으로 파고들려고 하지만, 식물의 입장에서는 정반대이다. 이런 입장의 차이가 체르노빌이라는 초객체(hyperobject)’의 흔적을 따라가는데 다른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체르노빌 인근의 붉은 숲의 소나무는 붉게 변하며 쓰러져 죽었지만, 부패하지도, 흙 속으로 스며들지도, 퇴비로 분해되지 않고 남았다고 한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며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아나이스 통되르의 포트그램과 마이클 마더의 파편들은 체르노빌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체르노빌은 끝이 나지 않았다.


글 / 박상현 협동사무처장

  • 월별보기
  • 리스트보기
전체 1,247
  • 1247
  • 1246
  • 1245
  • 1244
  • 1243
  • 1242
  • 1241
  • 1240
  • 1239
  • 1238
  • 열람중
  • 1236
  • 1235
  • 1234
  • 1233
  • 1232
  • 1231
  • 1230
  • 1229
  • 1228
  • 1227
  • 1226
  • 1225
  • 1224
  • 1223
  • 1222
  • 1221
  • 1220

미리보기창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