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쯤에 부산환경운동연합이 한 웹자보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웹자보는 “공상과학 소설 같은 소리하네!”로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일종의 광역 어그로 혹은 도발과 같은 소리라 당황을 하실 수도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터무니없거나 비현실적인 주장이 현실이 되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인도 출신의 소설가이자 평론가는 아미타브 고시는 『대혼란의 시대』를 쓰면서 “기후 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다”라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고시가 이렇게 부제를 붙인 이유는 문학, 정치, 역사와 같은 문화 양식이 기후변화를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해 다가오는 위험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거죠.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상상력이 절실해진 시대가 됐습니다. 그리고 '상상력'이 절실해진 기후위기의 시대와 함께 대한민국에서 SF소설들이 태동하여 겹치지기 시작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저의 추측아니냐구요?


위의 기후위기에 대한 거대한 사건들과 한국의 SF 소설 판매량의 증가 추이를 겹쳐보았습니다. 2018년 이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에서 「1.5°C 특별 보고서」가 발간되면서 그동안에 '기후변화'라는 용어가 '기후위기'로 격상되었고, 지금은 '기후비상사태'라는 말로 점점 바뀌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럽은 폭염 때문에 ‘에어컨’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부산의 인접도시인 양산시는 섭씨 40°C 를 돌파했습니다.
과거에는 기후 위기의 징후가 국지적이거나 서서히 나타났기 때문에, 대다수 사람에게는 SF 영화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 세계적인 이상 기후가 일상이 되면서, 이제는 '비현실'이 아닌 '당장의 생존 문제'가 된 셈이죠.
하지만 지금 단체들의 기후위기 대응은 너무나 전문가주의가 빠졌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2024년 8월 29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에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에서 온실가스 감축 경로를 “오목으로 할거냐? 볼록으로 할거냐?”라고 논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무슨 말인지 체감을 못할 겁니다. 활동가인 저조차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지나갈 때도 있으니 말입니다. 시민운동진영에서 ‘기후위기’를 보는 관점이 너무나 경직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기후위기와 SF 창작의 시작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4월 28일 진행된 『파라-다이스 』부산북토크를 진행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연립서가와 함께 7월 25일(토) 오후 4시 부산시민운동센터 혁신홀P에서 SF 작가인 황모과 작가님을 모시고 프로그램을 내딛었습니다. 황모과 작가님과 대화를 진행하기 전에 황모과 작가님의 짧은 발제를 먼저 들었습니다. "SF가 세계를 바꾼다"라는 말로 발제가 시작해 엔딩에서는 반드시 문제를 해소시킬 것을 강조하며 발제가 끝이 났습니다. 솔직히 황모과 작가의 발제의 정확한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SF가 세계를 바꾼다"라는 인식에서 "엔딩에서는 반드시 문제를 해소시킬 것"으로 이어지는 내용에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대담에 들어가기 전에 황모과 작가님이 "서로를 구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본인과 활동가의 작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기후위기를 대하는 경직적 태도, 전문가주의에 빠진 시민사회의 대응에 불만이 있어서 이런 행사를 기획했던 제가 활동가와 작가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태도에 빠져 있었다니 부끄러웠습니다. SF소설뿐만 아니라 어떤 이야기든 "엔딩에서는 반드시 문제를 해소시킬 것"이라는 태도는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근 절찬리에 연재되었던 후지모토 타츠키의 <체인소맨>의 결과를 보고 말들이 많았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작가뿐만 아니라 활동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정신없게 활동을 하지만 "활동 마지막에서 일정정도라도 문제를 해소"시켰던 경험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황모과 작가의 발제가 끝이 나고, 황모과 작가님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황모과 작가가 다작을 한 작가라 여러 작품에 대한 얘기와 실제로 활동하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장면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유, 자신만의 글쓰기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 SF와 판타지 소설의 차이점, 작가노조활동 등 많은 주제들을 얘기하다가 기획한 시간보다 20분을 더 잡아먹고 대화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황모과 작가와 대화를 마치고 증정식이 있었는데요. 부산환경운동연합의 정상래 상임대표님이 황모과 작가를 위해서 궁서체로 쓰신 시 구절을 증정했고, 이번 행사의 공동주최를 맡은 연립서가에서는 『파라-다이스 』의 사진과 에세이를 기고하신 정주하 작가님의 필름사진을 증정해주셨습니다. 서로의 증정식이 끝나고 단체사진까지 찍고 이번 행사는 마치게 되었습니다.

준비한 행사가 끝이 나면서 황모과 작가가 최근에 발표한 소설집에 수록된 내용이 새록새록 생각이 났습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던 인물들이 서로 악몽을 통해 연결되지만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그런 모습. 아마도 그날의 자리는 그런 낮선 풍경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이 날의 행사는 끝이 나지만 글쓰기는 끝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휴가를 보내고 있지만 잘 정비해서 한 편의 글의 완성할 수 있도록 마무리까지 잘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황모과 작가의 「몽유인들」에 나오는 구절로 이번 소식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낯선 풍경이 건물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언제나 바삐 움직이며 흘러가던 사람들이 오늘은 걸음을 멈추고 거리에 서 있었다. 옥상의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다들 잠옷 차림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고 휠체어에 앉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속에 완미 씨가 크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완미 씨가 친구들과 함께 찾아와주었다. 덴고쿠 손팻말을 들고 곁에 서 있었던 옆 사업장 언니들도 보였다. 다 같이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크고 자은 깃발을 손에 들고 흔들고 있었다. 나는 깃발에 쓰인 말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완미 씨에게 들었던 단어들이 깃발에 적혀 있었다. 뜨개수세미연맹, 파문용사합창단, 과학소설독재연대, 편랑아기동호회, 웹툰노동자산재보험쟁취위, 민주냥멍집사연합 등등…….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표표하게 나부끼는 말들을 보고 있자니 뜻이 조금 이해됐다. 그렇게 펄럭이는 것으로 의미가 완성되는 말이 있었다.
황모과, 「몽유인들」 , 『다른 세계의 나에게』, p.94
글 / 박상현 협동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