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푸른 나무, 맑은 물, 샛노란 탱자, 그리고 우리들
10월이면 가을이 깊어져야 하는데 햇볕 아래 날씨는 반소매를 입어도 괜찮을 정도로 따뜻했다. 10월 12일 토요일 아침, 내가 도착했을 때는 낙엽보다는 푸르름이 자리 잡은 박병규 회원의 범어사 밑 텃밭에 탱자나무 털이가 한창이었다. 박병규 회원이 긴 작대기로 흔들어대니 노랗고 앙증맞은 탱자들이 톡톡 떨어진다. 양대규 회장님, 김옥단 회원, 노주형 활동가, 텃밭 총무인 철수님 등 부지런히 탱자들을 줍고 계시는 모습이 푸르름과 어우러져 생동감이 넘친다.
탱자나무 옆 개울에 떨어진 탱자들을 줍기 위해 노주형 활동가와 나는 신발을 신은 채 물에 들어갔다. 맑고 시원한 물속에서 눈에 보이는 탱자도 담고 숨바꼭질하듯 숨어있는 탱자도 담다 보니 땀이 빼어 나온다. 졸졸 흘러가는 물속에 담긴 탱자들은 스스로 물놀이 나온 듯 물속에서 유유자적 쉬고 있는 듯도 보였다. 투명한 물속에서 햇볕과 나뭇잎 그림자 사이사이 탱자의 노란 빛깔은 한 폭의 그림처럼 이뻤다. 박병규 회원이 깊숙이 숨어있는 탱자들까지 찾아내자 물속에서 나올 수 있었다.
다음은 탱자의 겉에 묻은 때를 씻어내는 작업을 했다. 솟아나는 샘물가 옆에서 바가지로 물을 떠 부으며 박박 바가지 긁듯 박박 소리 내며 제법 깊이가 있는 고무 대야에서 허리 굽혀 팔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김옥단회원이 바가지로 물을 뜨고 탱자를 씻는 손놀림을 보면서 깡마른 몸이지만 얼마나 일에 잔뼈가 굵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밀가루와 em효소를 넣어 씻으니 투명했던 물 색깔이 점점 진회색으로 변할 때 탱자를 건지고 깨끗한 물로 두 번 정도 더 헹군 뒤 탱자들을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뺐다. 어느 정도 마른 탱자들은 항아리가 있는 곳으로 날랐다. 항아리 속에 있던 작년 탱자들은 꺼내어 두 병에 나누어 담은 후 새 탱자들을 항아리에 붓고 그만큼의 설탕을 부었다. 항아리 입구를 잘 봉해 끈으로 동동 매자 모든 작업이 끝이 났다. 작년 탱자들은 김옥단 회원과 이영미 회원이 데리고 가기로 했다.
보람찬 효소 담그기를 끝내고 산길을 걸어 박병규 회원과 양대규 회원이 함께 사업을 도모하는 비닐하우스 전시관으로 갔다. 노포동 도로 한켠에 자리 잡은 전시관은 잘 가꾸어진 식물들, 단단히 자리 잡은 돌들,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이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정화시켜주었다. 원목 탁자에 둘러앉아 따뜻한 산목련 차를 나누어 마시며 어느새 차가워진 날씨에 움츠러든 몸을 데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인사를 나누고 즐거웠던 노동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여전히 짙푸른 나무들, 맑은 물, 샛노란 탱자들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우리들이 어우러진 한폭의 풍경화처럼 머릿속에 자리잡는다.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 옳다.
글/ 이영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