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꼬지, 매년 여름에 하는 하구모임의 행사, 우리들의 휴가라고 보면 된다. 올해는 부산 원도심을 중심으로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서구의 한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에코하우스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중심으로 계획을 짰다. 태양광과 태양열 설비를 바탕으로 한 저탄소 숙박 시설이면서, 서구의 도시재생운동의 중심에 있는 곳이다. 결정이 나자 곧바로 예약을 시도했다. 방이 없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예약 성공.
차량은 최소한으로 운행하기로 하여 2대만 사용. 다른 회원은 모두 대중 교통으로 이동해서 자갈치시장에서 만나 송도로 향했다. 송도해수욕장과 암남공원이 첫날의 목표였다.
송도해수욕장에서 암남공원 사이를 이어 바다 위로 지나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송도해수욕장의 자연을 훼손하는 케이블카 건설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인 우리가 케이블카를 타게 돼서 약간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다. 상공에서 보이는 송도구름산책로가 용트림하는 용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돌아오면 꼭 걸어야지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해수욕장에서 암남공원으로 이어지는 절벽 옆으로 데크로 만든 산책로가 형성돼 있었는데 출입을 못하게 막아뒀다. 언젠가 바람이나 태풍에 훼손된 듯한데, 이후 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각자의 추억 속 송도와 암남공원과 혈청소에 대한 이야기, 새로 생긴 큰 건물과 바위 섬을 이른 구름다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도착 지점에 도착했다. 푹푹 찌는 무더위와 습기에 질릴 수 있었으나, 그 날은 다행스럽게도 그다지 기온이 높지 않아 천만 다행이었다. 시원한 음료 하나씩 들고 암남공원으로 출발. 갈림길에서 해안길로 내려가는 팀과 숲길로 가는 팀으로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나는 시원한 나무 그늘 사이로 산책하는 숲길팀으로 갔다. 이 더운데 경사진 길은 포기한 것. 나중에 들어보니 해안길 팀은 경사가 심해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땀 좀 흘렸다고 한다.
숲이 잘 보전된 암남공원을 거닐며 나무와 풀과 새와 햇살과 바람과 그늘을 누렸다. 숲길 조금 가다보면 바다가 훤히 트인 전망대가 나오고, 전망대에서 숲으로 발길 돌리면 다시 시원한 숲이 나오고. 이렇게 숲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참 고마웠다.
이 곳에도 자본의 힘이 점점 들어오고 있으니, 오늘이 송도의 가장 자연스러운 날일 수 있다.
해수욕장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다시 바닷가로 나왔다. 송도의 재발견이라고 할까? 익히 알고 있던 해운대, 광안리, 송정의 붐비고 부산스러운 느낌이 없었다. 조용하고 붐비지 않으면서 깨끗하게 정돈된 해수욕장과 맑은 바닷물이 조용한 휴가를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딱 좋아 보였다.
송도구름산책로를 걸었다. 바다 가운데에 있는 거북이 모양의 다이빙대에서는 다이빙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 지어 서 있고, 구름산책로에서는 바다 위를 걷는 사람들이, 거북섬 쪽에는 물에 발 담근 아이들과 어른들이 놀고 있었다. 우리도 살짝 물에 발 담그기 시도~~ 가족 모임이나 데이트나 다 좋을 것 같은 송도다.
이번에는 차를 가지고 암남공원으로 다시 이동했다.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 자리 잡고 휴식. 열심히 걷고 열심히 쫒아다니며 열심히 들여다보던 우리가, 바쁜 마음 다 풀고 여유를 즐겼다.
빗방울이 살짝 들기 시작했다. 사실 그날 일기예보에 의하면 전국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하루 내내 살짝 흐린 정도로 선선한 날씨였다. 우리의 일정이 끝나갈 무렵에 빗방울이 내렸다. 원래 일정은 숙소에 체크인 한 후, 차를 숙소에 두고 택시로 이동해서 자갈치에 가서 꼼장어 먹는 것이었는데, 비가 오면서 숙소에서 식사하는 것으로 일정을 수정했다.
장보는 팀과 음식 포장해 오는 팀으로 나눠서 출동. 송도에 마트를 검색해 보니 나오긴 하는데, 찾아가 보면 주차가 불가하거나 입구가 이상하거나 하면서, 길은 완전 골목길에서 빙빙 돌게 되는 이상한 마법이 있었다. 결국 몇 바퀴 돌다가 포기하고 운에 맡기기로 했다. 숙소 가는 길에 있기를 바라며 달린 끝에, 결국 숙소 도착 1km 전에 작은 슈퍼마켓을 만났다. 흔하지 않은 귀한 슈퍼마켓이 아직 있었다. 주택가 골목에도 편의점이 다 들어왔는데 말이다. 이것 저것 필요한 것은 다 있었고, 주인분은 우리가 가는 숙소에 대해서도 알고 질문을 해 주셨다. 동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 알고 있던 옛 마을의 느낌이 난다.
숙소는 천마산 둘레길에 면해 있었는데, 앞으로는 송도-자갈치-중앙공원까지 드넓게 펼쳐진 원도심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천마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발전과 태양열 설치로 전기와 온수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으니, 에코하우스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포장해 온 꼼장어와 족발을 나눠 먹으며 하구모임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긴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오전 일정은 천마산 둘레길 걷기. 숙소를 나서면 곧바로 천마산 둘레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이 천마산을 둘러싸고 비석마을과 감천마을도 인근에 있으며, 둘레길에는 최민식갤러리를 포함하여 도시재생 사업으로 만들어진 여러 시설들이 늘어서 있다. 여유롭게 천천히 걸으며 원도심의 정감과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좋은 곳이다.
밤새 내린 비로 산길은 촉촉했고, 긴 가뭄 속에 숨죽이고 있던 잎들이 기지개를 펴는 것 같았다. 탱자나무길, 돌담길, 보석 같은 버섯까지 만난 조용하고 촉촉한 산책 후에 최민식 갤러리로 갔다. 부산의 근대사가 오롯이 담겨있는 작은 갤러리에서 한 사람의 위대함을 만났다. 전시되어 있는 사진 중 한 장을 사진으로 찍어 담아보았다. 감천마을의 옛 모습, 가슴이 메인다.
한없이 남루한 현실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던 사람과 웃음과 희망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희망과 웃음과 사람, 시대는 달라도 사람은 달라도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지향하는 가치가 아닐까.
글 / 김은경 하구모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