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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사] 토종 씨앗과 나의 농사
2020-12-09

안녕하세요? 부산환경운동연합 가족 회원이자 강북사 회원 최성찬입니다.

강북사 10월 모임 중 “토종 씨앗에 대하여” 작은 발표가 있었습니다.

소식지 원고를 작성하다가 이에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첨삭하고 정리하여 올립니다. 졸고지만 예쁘게 봐주세요.

살다 보니 ‘이게 아니다’ 싶은 생각이 참 많이 듭니다. 근원적으로 땅에 대한, 초록에 대한 향수를 지닌 우리는 메마르고 치열한 도시 생활에 많이 지쳤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도 놓아 보고 주말이면 교외의 텃밭이나 주말농장에서 채소 농사도 지어보고, 멀리는 귀농·귀촌까지도 생각하는 도시인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좀 더 건강한 삶, 기르고 수확하는 기쁨, 깨끗하고 안전한 먹을거리 등 많은 가치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에 운명적으로 부산귀농운동본부에 교육을 수강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토종 씨앗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어줄 공부를 찾게 되었고 농대에 진학하여 종자 기사 자격증까지 따게 되면서 도시농업 관리사가 되어 이후 다양한 단체에 도시농업과 가치를 전파하는 활동을 지금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토종이란 무엇인가?

“한 알의 종자가 세계를 바꾼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계 인류의 먹을거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곡물 중의 하나인 전 세계 밀 품종의 25% 속에는 언제 없어졌는지도 확인되지 않는 한국의 토종인 “앉은뱅이 밀”의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임진왜란 즈음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품종 “농림 10호”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한 것으로 학자들은 밝히고 있으며 “농림 10호”는 미국을 통하여 멕시코의 국제 보리류·옥수수연구소에서 키 작은 밀 육종에 공헌하여 밀 육종가 노먼 볼로그 박사가 1970년 노벨 평화상을 받는 중추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한라산이나 지리산정에 있는 구상나무와 북한산의 털개회나무를 비롯하여 261 수종이 1917~1989년간 미국인 학자에 의해 수집되어가서 새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미스킴 라일락” 등으로 이름 붙여져 인기 있는 수종으로 역수입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최근 미국으로부터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는 콩은 그 원산지가 만주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이며 미국이 1901년부터 1976년 사이에 한국에서 5,496점이나 되는 재래종 콩을 수집하여 갔으며 그 중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 보존하고 있는 것만도 3,000여 점이고 미국 농무부에 보관된 것도 5,000여 점이나 됩니다. 이렇게 수집하여 간 콩은 그 특성을 조사하고 종자 은행에 보존하고 있는 한편 좋은 품종을 육종하는 교배표본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의 중요한 콩 품종을 육종 하는 데는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도입한 35품종이 95%의 유전인자를 제공하였고 그중 5품종이 한국의 토종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토종의 정의는 “우리나라에서 옛 선조들로부터 기르고 재배하여 내려온 가축이나 작물” 또는 “한반도의 자연생태계에서 대대로 살아왔거나 농업생태계에서 농민에 의하여 대대로 사양, 재배 또는 이용되고 선발되어 내려와 한국의 기후 풍토에 잘 적응된 동물, 식물, 그리고 미생물이다”입니다.

쉽게 풀이해서 한세대 즉 30년 이상 우리나라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여 길러져 온 동식물, 미생물을 말합니다.

정의 속에 토종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고 봅니다.

토종은 우리 민족의 얼이 배어있는 생명체입니다. 토종은 생명공학, 신품종 육종, 생물학연구의 기본 자료인 유전자원으로 약용식물로의 가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씨앗은 농사의 시작이고 끝이며 다시 순환의 고리가 됩니다. 옛말에 농부는 굶어 죽을지언정 씨앗은 먹지 않고 베갯잇에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씨앗 받는 농사가 사라졌습니다. 평생 김치를 먹으면서 배추 씨앗을 받아본 사람은 몇이나 되고 평생 상추를 고기 싸 먹어는 봤어도 상추씨 받아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10여 년간 씨앗 받는 농사를 짓고 있는 나로서는 작물을 먹은 만큼 씨앗을 받아 그 후손을 퍼뜨려 주는 게 진정 그 작물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합니다. 토종 씨앗은 볼품이 없어 상품성이 없고 돈이 안 되고 수확량이 적어 거의 사라지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분이 심지어 농부조차 종묘상에서 돈 주고 사다 심는 데 문제는 사다 심는 종자는 대부분 불임 씨앗이라는 사실입니다. 키워 먹을 수는 있어도 다음 씨앗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계속 돈 주고 사다 심게 만든 것입니다. 개량종은 수확량도 많고 상품성이 뛰어날지는 모르지만, 병해충에 약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종자를 개량할 때 특정 병에 강하게 육종하기 때문에 개량종은 ‘수직 저항성’에 강하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특정 병에는 강할지 모르지만, 그 외 다양한 병들에는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토종은 오랜 세월 같은 환경에서 재배되어왔기 때문에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여러 가지 병충해에 견뎌왔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병에 걸릴지라도 스스로 치유하거나 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를 앞의 수직 저항성과 대비하여 ‘수평 저항성’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토종농사인가?

토종 씨앗은 오랜 세월 우리 환경, 우리 자연. 우리 고향에서 재배되어왔기 때문에 우리 입맛에 잘 맞습니다. 우리 환경에 맞으니 내 몸에도 맞습니다. 진정한 신토불이 종자입니다.

또한, 토종 씨앗은 농약이나 화학비료, 비닐멀칭이나 기계 농법, 비닐하우스에 맞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노지에서 재배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전통농법, 즉 생태적 농법으로 지어야 맞는다는 말이고요. 온실처럼 철을 어기고 재배하는 것에는 맞지 않는 그래서 더욱 제철에 맞게 농사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기계, 농약, 화학비료 없이도 짓는 요즘의 도시농업에 잘 들어맞는 농사가 됩니다.

토종으로 농사지으면 씨앗을 돈 주고 사지 않아도 되고, 병충해에 강해 돈도 적게 들고, 내 입맛에 맞고 내 몸에 맞아 건강에도 좋습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무분별한 농약의 남용과 각종 자유무역협정으로 수입된 실체를 알 수 없는 농산물에 대한 불안감이 내 손으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직접 길러 먹겠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퍼지고 흙으로 돌아가고픈 회귀본능이 강하게 작용하여 도시농업이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부산귀농운동본부 생태 농부학교 강의에 오신 안철환 선생님은 “4인 가족 기준으로 10평 텃밭 농사로는 채소 자급이 가능하고 30평이면 고추, 마늘, 양파와 같은 양념 농사까지 자급할 수 있고 50평 정도면 밀, 보리, 밭벼 등 주곡 농사까지 가능하게 되고요. 100평이면 완전자급이 가능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 농사를 지어보니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농업은 식량 자급률 100%가 넘는 유럽과는 북미의 농업과는 사뭇 다릅니다. 식량 자급률이 22.5%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유엔의 추측에 따르면 2030년에는 65%의 사람이 도시에서 살고 특히 중남미에서는 80%를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시는 모든 위험과 천재지변에 약한데 특히 식량과 에너지는 절대적으로 외부에 의존합니다. 하지만 농업을 통해 식량 자급과 에너지 자급률을 높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토종농사의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채소류 정도는 자급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시의 채소 자급률이 높아지면 농촌에서는 그만큼 부담이 줄어 주곡 생산에 힘을 모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식량 자급률 향상에도 도움이 됩니다. 이는 또한 에너지 절약에도 도움이 됩니다. 식료품을 수송하는 데 에너지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전 세계에서 식료품 수송과 관련되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전체 배출량의 30% 이상에 이른다고 합니다. 수입농산물 유통에 들어가는 엄청난 운송에너지를 고려할 때 토종농사를 통해 식량 생산량을 높이고 석유에 의존하는 대규모 단작농업에서 벗어난다면 에너지 절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매년 남은 음식물이 증가해 그 처리비용이 자그마치 20조 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현재 43조 원쯤 되는 국내 농산물 생산 총액의 절반 가까이 버리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남은 음식물과 축산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것이 금지되면서 처리비용이 더욱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남은 음식물을 버리지 않고 자원화하는 순환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외부투입에 의존하지 않고 내 주변에서 나온 인간과 자연의 부산물 즉 인분, 오줌, 음식물 쓰레기 등의 자가 퇴비를 만들어 땅에서 나온 것을 다시 땅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순환 그 자체입니다. 우리의 전통 벼농사와 콩 농사는 단작 연작을 해도 땅을 해치지 않습니다. 몇 천 년 동안 같은 땅에서 벼를 연작해도 땅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반면 밀이나 옥수수는 연작하면 토양이 망가지는 대표적인 곡식입니다. 밀의 단작과 연작이 계속되면 연간 10톤의 흙이 침식되고, 옥수수는 그 양이 연간 20톤에 달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 1930년 미국 농학자들이 계산해낸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밀의 경작 수명은 100년, 옥수수는 50년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100년 동안 밀만 경작하면 땅은 이제는 농사가 되지 않는 사막이 되고 옥수수는 더 빨라 50년이 지나면 사막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왜 벼는 토양을 침식하지 않고 연작피해가 없을까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바로 물 때문입니다. 연작피해의 대표적인 현상은 작물이 뱉어내는 독소인데 하나의 작물을 계속해서 단작, 연작하게 되면 특정 독소가 토양에 축적되어 토양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논에 담가놓은 물이 작물의 독소를 중화시켜 연작피해를 막는 셈입니다. 또 다른 연작피해는 미량요소의 결핍입니다. 특정 작물을 계속해서 심게 되면 그 작물이 좋아하는 미량요소만 흡수하여 미량요소의 균형이 깨집니다. 물에는 다양한 미량 미네랄이 풍부해 연작으로 결핍된 미량의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어 미량요소의 불균형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비단 자원순환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유기농, 자연 농의 가치를 전파하고 실천하게 하는 그 가치를 대를 이어 나가는 사람의 교육도 중요합니다. 사람의 순환과 씨앗의 순환 이것도 자원의 순환만큼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지구생태계에 1,000만 종의 생명체가 균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 중 고등식물은 250,750종이며 그들의 소멸속도는 하루에 50~100여 종씩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작물 재래종의 소멸속도는 대단히 빨라서 1985년부터 1993년까지 다 사라지고 26% 정도만 남은 것으로 조사 된 바 있습니다.

토종을 지키기 위하여 우선 토종의 실태조사를 겸한 소멸 전 수집확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씨농이 연대하고 있는 씨드림이라는 단체에서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지역 토종 씨앗을 수집하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농가의 70~80대 노인들이 농사를 지으며 보유하고 있는 토종들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활동하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예를 들어 울주군이나 언양 등) 수집되지 않은 숨어있는 토종의 수집이 절실합니다.

다음으로 수집된 토종자원을 지속해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의 모색이 중요합니다. 토종과 함께 발전되어온 농사방법 농기구 먹는 방법 등의 전통지식도 발굴, 보전되고 활용되어야 합니다. 하나의 예로 발굴한 토종들은 최근에 크게 활성화 하는 세계 슬로푸드의 맛의 방주에 올려 세계적인 생명 다양성 보존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유기농업이나 자연농업에 적용함으로써 소농들의 로컬푸드 등에 의한 유기 농가의 소득창출과 함께 토종이 잘 적응되어가고 보존되어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토종은 식량 주권을 살리는 근간입니다. 토종은 종자 주권을 지키기 위한 기본자원이 됩니다. 종자회사의 일회성 종자 육종판매와 농민들의 소득증대 의욕에 부응한 원예작물의 F1 잡종 품종보급의 급격한 증가에 따라 종자의 주인이 농부에게서 종자회사로 넘어가 버린 지 이미 오래됩니다. 농부가 스스로 씨를 받고 육종하여 나눌 수 있도록 기업의 배타적 특허권에 반대해 농부의 농부권이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활동을 꾸준히 벌여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부산귀농운동본부는 다양한 생태 텃밭에서 많은 동문이 농사 정보도 공유하고 서로의 수확물도 나누면서 또한 생명과 자연의 신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주는 이웃이 된 지도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공동체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작물과 풀과 벌레와 모든 생명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농사를 지으면서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나 봅니다. 공동체의 근거는 노동과 밥입니다. 함께 노동하고 함께 밥을 먹는 곳에 공동체가 만들어집니다. 우리 부산귀농운동본부의 수업은 이론과 실습으로 이루어지는데 실습이 끝날 때면 어김없이 도시락을 싸 와서 다 함께 나눠 먹는 풍습이 생겼습니다. 과정이 끝나면 자연스레 동기회가 만들어져 동기회 텃밭을 같이하고 텃밭 작업이 끝나면 가져온 도시락을 다 함께 먹으면서 자연스레 공동체가 형성되어 집니다.

생태적이고 자급적인 가치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도록 씨앗과 사람이 계속 관계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에 경작 본능의 씨앗을 심어 어디서든 농사를 짓고 밥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기를 간곡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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